강아지 꼬리 쫓기·발 핥기, 단순 버릇과 강박장애 구별법

10여년전 대전의 한 유명 펫샵에서 본 장면입니다.

믹스견으로 보이는 아이 하나가 바닥에서 하염없이 뱅글뱅글 돌고 있더군요. 처음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런데 이 행동이 좀처럼 멈추질 않는 거예요. 그때부터는 웃음기가 가시고 유심히 그 아이를 지켜보기 시작했습니다. ‘쟤 왜 저러지?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직원들한테 물어봤지만 시원한 답을 듣진 못했습니다. “쟤 원래 저래요” 하면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지나치더군요. 매일, 또는 자주 보는 모습이니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저한테는 그렇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절친한 원장님께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제 예상이 딱 맞았어요. 그게 바로 강박관념, 즉 강박장애에서 나타나는 행동 중 하나라고 하시더군요.

동물 의약품 유통 현장에서 10년을 보내면서 그 펫샵 아이 같은 이상행동을 적지 않게 봤습니다. 한자리에서 빙글빙글 제 꼬리를 쫓는 아이, 발등이 벌겋게 헐도록 핥고 또 핥는 아이, 허공에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를 자꾸 무는 아이들이었죠.

자기 꼬리를 빙글빙글 쫓는 강아지 — 개 강박장애 행동
한두 번이면 놀이지만, 멈추질 못하고 반복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대부분의 보호자가 그러시듯, 처음엔 다들 별난 버릇 취급하고 넘깁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버릇이 아니라, 수의행동의학에서 다루는 엄연한 질환입니다.


강박장애, 정확히 뭘까요?

사람한테 강박장애(OCD, Obsessive-Compulsive Disorder)가 있다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손을 수십 번 씻거나, 문을 잠갔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그런 행동들이죠. 강아지에게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다만 강아지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사람의 OCD를 그대로 붙이진 않고 수의학에서는 보통 강박장애(CCD, Canine Compulsive Disorder) 또는 상동행동이라고 부릅니다. 핥기, 돌기, 짖기처럼 원래는 정상인 행동이 아무 맥락 없이, 과하게, 그리고 멈추기 어려운 형태로 반복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글에서는 익숙한 표현으로 그냥 ‘강박’ 또는 ‘강박장애’라 하겠습니다.


이게 그냥 버릇일까, 병일까?

보호자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시는 게 바로 이 지점일 겁니다.
강아지가 가끔 꼬리를 쫓거나 발을 핥는 건 지극히 정상이거든요. 심심하거나, 가렵거나, 관심을 끌고 싶을 때 그러죠. 그럼 정상적인 행동과 강박은 어떻게 구별될까요?

발을 집요하게 핥는 강아지 — 강박행동과 단순 그루밍 구별
발등이 벌겋게 헐 정도라면 단순한 그루밍이 아닙니다

미국의 동물병원 체인 VCA에 따르면, 강박장애는 다음 세 가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첫째, 멈출 수 있느냐입니다.
단순한 버릇은 이름을 부르거나 간식을 흔들면 금방 멈추고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립니다. 강박은 불러도 잘 멈추지 못하고, 억지로 떼어놔도 다시 시작합니다. 그 대전 펫샵 아이가 직원이 지나가도 아랑곳없이 계속 돌던 것처럼요.

둘째, 몸을 다치느냐입니다.
발을 핥아 피부가 헐고, 꼬리를 물어 상처가 나고, 빙빙 돌다 지칠 때까지 멈추지 못한다면 이미 정상의 선을 넘은 겁니다. 보통은 아프면 멈출 법한데, 강박은 피부가 헐어 피가 나도 멈추질 못합니다.

셋째, 일상이 깨져버리느냐입니다.
그 행동에 빠져 밥도 안 먹고, 놀자고 해도 반응이 없고, 하루의 상당 시간을 거기에 쓴다면 분명한 신호라고 봅니다.


자주 보이는 강박행동들

허공의 무언가를 무는 듯한 강아지 — 플라이 스내핑 강박행동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자꾸 무는 행동도 강박행동의 한 유형입니다

강박행동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아이가 여기에 해당하는지 한번 떠올려 보세요.

가장 흔한 건 빙글빙글 도는 행동입니다.
자기 꼬리를 끝없이 쫓거나(tail chasing), 같은 자리를 왔다 갔다 서성이는(pacing) 모습이죠.
대전 펫샵 아이가 보였던 게 바로 이 유형입니다. 빛이나 그림자를 집요하게 쫓는 아이들도 있는데, 레이저 포인터를 너무 많이 가지고 논 아이에게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핥고 씹는 강박도 많습니다. 한 부위를 집요하게 핥아 피부가 헐어버리는 말단 핥음 피부염, 자기 옆구리를 빠는 행동(특히 도베르만에게 많습니다)이 대표적입니다.

그 밖에 허공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무는 행동, 물건을 강박적으로 빨거나 물고 다니는 행동도 보고됩니다.

여기서 꼭 짚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발을 자꾸 핥는 행동은 강박이 아니라 알레르기나 통증 때문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점입니다.

부위별로 핥는 의미가 다른데, 이건 강아지가 핥는 이유, 부위별로 뜻이 다릅니다 글에서 따로 정리해 두었으니 함께 보시면 구별에 도움이 되실 거예요.


강박처럼 보여도, 사실은 ‘몸의 병’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이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대목입니다.
강박처럼 보이는 행동이 알고 보면 신체 질환의 신호인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수의사에게 진료받는 강아지 — 강박 진단 전 신체 질환 확인
강박처럼 보여도 먼저 몸에 병이 없는지 확인하는 게 순서입니다

발을 계속 핥는 건 피부 알레르기나 관절 통증 때문일 수 있습니다. 허공을 무는 행동은 드물지만 부분 발작이나 소화기 불편과 관련되기도 하고요. 빙빙 도는 행동이 뇌신경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비슷해 보이는 행동이 발작인 경우도 있는데, 강아지 발작과 사람 간질이 어떻게 다른지는 이 글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그래서 수의행동의학에서는 강박장애라고 진단하기 전에 반드시 신체 질환부터 하나하나 배제합니다.
“행동 문제겠거니” 하고 넘겼다가 정작 아픈 곳을 놓치면 안 되니까요. 반복 행동이 보인다면 행동 교정을 고민하기 전에, 먼저 동물병원에서 몸 상태부터 확인하는 게 순서입니다.


그런데 왜 생길까요 — 사람 강박장애와 닮은 뿌리

원인을 알고 나면 강박이 왜 ‘의지의 문제’가 아닌지 분명해집니다.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미국 터프츠대 연구진이 강박행동을 보이는 도베르만들을 분석했더니, 사람의 강박장애와 연관된 유전자가 개에게도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Dodman 외, 2010). 후속 연구에서는 강박행동을 보이는 개의 뇌 구조가 정상 개와 다르고, 그 차이가 사람 OCD 환자의 뇌에서 보이는 변화와 닮았다는 것까지 확인됐습니다.

좁은 케이지 안에서 서성이는 강아지 — 단조로운 환경과 강박
갇혀 있고 할 일이 없는 환경은 강박행동을 부르는 대표적 원인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개의 강박은 사람의 강박장애와 비슷한 유전적·신경학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성격이 유난해서’가 아니라 ‘뇌가 그렇게 작동해서’ 생기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스트레스와 환경이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갇혀 지내는 시간이 길거나, 운동과 자극이 부족하거나, 불안이 큰 환경에서 강박이 시작되고 깊어집니다.
처음엔 스트레스를 달래려던 행동이, 반복되면서 뇌에 길처럼 굳어지는 거죠.
동물원의 큰 동물이 좁은 우리에서 같은 자리를 끝없이 도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러고 보면 그 대전 펫샵 아이도,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비슷한 환경에 놓여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원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아이가 자기 몸을 다칠 만큼 심하게 반복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수의사, 가능하면 수의 행동의학 전문가를 찾아가셔야 합니다.

강박장애에는 사람의 강박장애 계열의 약이 처방되기도 합니다. 사람 OCD에 듣는 약이 개에게도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 자체가, 둘이 같은 뿌리의 질환임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셈이죠.

다만 분명히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약물의 종류와 용량, 투여 시점은 전적으로 수의사가 판단할 몫입니다. 제가 여러 글에서 누차 말씀드리지만 사람 약을 임의로 먹이는 일은 절대로 안 됩니다. 약물은 어디까지나 환경 관리와 행동 교정을 돕는 보조 수단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 주세요.


집에서 할 수 있는 것

병원 치료와 함께, 보호자가 집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가장 먼저 충분한 운동과 두뇌 자극을 주세요.
강박은 갈 곳 잃은 에너지와 스트레스에서 자랍니다. 산책 시간을 늘리고, 노즈워크나 간식 퍼즐처럼 머리를 쓰는 놀이를 더해 주세요.
코를 쓰며 집중하는 활동은 불안한 에너지를 건강하게 풀어주는 데 특히 좋습니다. 강아지 노즈워크 장난감을 활용하면 집에서도 충분히 자극을 줄 수 있어요.

노즈워크 매트에 코를 박은 강아지 — 강박 에너지 해소 놀이
코로 먹이를 찾는 노즈워크는 남는 에너지를 건강하게 풀어주는 좋은 방법입니다

다음으로 원인을 찾아 줄여주세요.
빛이나 그림자 강박이 있다면 레이저 포인터 놀이를 끊고, 어떤 상황에서 그 행동이 시작되는지 며칠만 유심히 관찰해 보세요. 패턴이 보이면 그 자극을 미리 차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절대 야단치시면 안 됩니다.
강박행동을 혼내면 아이는 더 불안해지고, 그 불안이 다시 강박을 키우는 악순환이 됩니다.

게다가 “그만해!” 하며 다가가 관심을 주는 것 자체가 아이에겐 일종의 보상이 되어, 오히려 행동을 굳힐 수 있습니다. 행동이 나온 뒤에 혼내기보다, 그 전에 환경을 바꾸고 다른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강박 행동은 강아지의 여러 신경·정신 문제 중 하나입니다. 분리불안, 우울증, 천둥 공포증 등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질환들과의 구별이 궁금하다면 아래 글에서 정리해 두었습니다.
→ 강아지 이상행동 7가지 신경·정신 질환 총정리


마치며

지금도 유튜브 탐색 피드에서 가끔 강아지 쇼츠를 봅니다. 그런데 이런 꼬리물기, 뱅글뱅글 도는 아이들 영상이 심심찮게 올라와 있더군요. 아무것도 몰랐다면 “재밌네” 하면서 웃고 넘겼을 영상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재미로는 못 보겠더라고요. ‘저 아이도 멈추고 싶을텐데, 보호자가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빙글빙글 꼬리를 쫓고, 발을 핥아 헐게 만드는 우리 아이는 별난 것도, 말을 안 듣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마음과 뇌가 보내는 신호를 행동으로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

그 신호를 ‘버릇’이나 ‘웃긴 영상’으로만 보면 놓치겠지만, ‘도와달라는 말’로 들으면 길이 보입니다.
먼저 몸에 아픈 곳이 없는지 확인하고, 에너지를 충분히 풀어주고, 야단 대신 차분한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그래도 힘들어한다면 수의사 선생님과 상의해 주세요.

우리 아이가 오늘 그 행동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어떤 순간에 시작했는지 한번 가만히 지켜봐 주세요. 그 작은 관찰이 우리 아이를 돕는 첫걸음입니다.

참고자료

[1] VCA Animal Hospitals. “Compulsive Disorders in Dogs.” → 미국의 대형 동물병원 체인. 강박행동이 멈추기 어렵고, 몸에 상처를 만들고, 정상적인 일상을 방해할 때 강박장애로 진단한다는 기준을 제시. https://vcahospitals.com/know-your-pet/compulsive-disorders-in-dogs

[2] Merck Veterinary Manual. “Behavior Problems of Dogs.” → 수의학 표준 레퍼런스. 정상이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과, 강박장애를 포함한 비정상 반복행동을 구별하는 기준을 다룸. https://www.merckvetmanual.com/behavior/behavior-of-dogs/behavior-problems-of-dogs

[3] Dodman, N. H., Karlsson, E. K., Moon-Fanelli, A., et al. (2010). “A canine chromosome 7 locus confers compulsive disorder susceptibility.” Molecular Psychiatry, 15(1), 8–10. → 터프츠대 연구. 강박행동을 보이는 도베르만에게서 사람 강박장애와 연관된 유전자(CDH2)가 관여함을 밝힘. https://pubmed.ncbi.nlm.nih.gov/20029408/

[4] Ogata, N., Gillis, T. E., Liu, X., et al. (2013). “Brain structural abnormalities in Doberman pinschers with canine compulsive disorder.” Progress in Neuro-Psychopharmacology and Biological Psychiatry, 45, 1–6. → 강박행동을 보이는 개의 뇌 구조가 정상 개와 다르며, 그 차이가 사람 OCD 환자의 뇌 변화와 유사함을 확인. https://pubmed.ncbi.nlm.nih.gov/23590875/

[5] Hewson, C. J., Luescher, U. A., Parent, J. M., et al. (1998). “Efficacy of clomipramine in the treatment of canine compulsive disorder.” JAVMA, 213(12), 1760–1766. → 클로미프라민(사람 강박장애에도 쓰이는 약물)이 개의 강박행동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음을 입증한 무작위 대조 연구. https://avmajournals.avma.org/view/journals/javma/213/12/javma.1998.213.12.1760.xml

사진 출처(Image Credit): 본 포스팅의 이미지는 Pixabay 및 Unsplash,Pexels의 무료 이미지를 사용하였습니다.

작성자 정보: 다국적회사 제약 영업 14년 + 동물의약품 유통 총괄 10년 경력자(전 사노피, 에스틴 근무)가 전하는 더 많은 이야기는 아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작성자 소개글입니다
펫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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